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05인 사건 (문단 편집) === 사건의 발단 === 일각에 의하면 당시 [[천주교 서울대교구]] 제8대 교구장이었던 [[파리외방전교회]] [[선교사]] [[귀스타브샤를마리 뮈텔]] [[주교]]가 [[아카시]](明石)[* 주한 [[일본군]] 헌병대 사령관 겸 [[조선총독부]] 경무 총감]를 찾아가 [[안중근]] 의사의 사촌 동생이 총독의 암살을 계획하고 있다는 제보를 하게 되었던 것으로 알려졌다. 뮈텔 주교가 써 왔다는 일기장에도 이와 같은 사실이 상황적으로 기재된 것으로 알려졌다. [[안명근]] 야고보는 사촌 형인 [[안중근]] 토마스와 마찬가지로 독실한 [[가톨릭]] 신자였는데 당시 사촌 형과도 친했다는 [[프랑스인]] [[니콜라 빌렘]](한국명 홍석구) 신부에게 총독을 암살하겠다는 의사를 알린 것이 발단이었으며 이를 듣게 된 빌렘 신부가 상급자인 뮈텔 주교를 찾아가 그에게 직접 보고하여 결국 뮈텔이 [[총독부]]를 찾아가 그 사실을 그대로 보고하였던 것이다.[* 여기에 대해 니콜라 빌렘 신부가 고해성사를 누설한 것이라는 '''낭설'''이 있으나 이는 1차 사료에 기반하지 않은 'TV 드라마의 [[고증오류]]'다. 물론 고해성사 누설이 아닐 뿐이지 윤리적 논쟁은 따르겠으나 최소한 고해성사 누설이라는 건 루머다. 자세한 건 [[니콜라 빌렘#s-3|니콜라 빌렘]] 문서 참고.] 당시 종현 성당([[명동성당]])은 일본인들이 명동성당의 일부 부지를 침범함으로 인해 [[진고개]](충무로 2가)로 넘어가는 통로가 막혀 있었고 이에 대해 소송을 제기한 상태였다. 1906년부터1910년까지 4년 동안의 재판에서 모두 패소해 해결될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던 시기에 명동성당의 [[뮈텔]] 주교는 [[니콜라 빌렘]] 신부로부터 온 비밀 편지를 아카시 장군에게 전달함으로써 [[독립운동가]]들을 밀고하였고 그에 대한 대가로 명동성당의 부지 문제를 협의하고 즉각 해결하였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